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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증의 Old Man of Storr

국가
스코틀랜드
AI summary
Old Man of Storr 트레킹에 대한 경험을 담은 글로, 가족과 함께한 여정에서의 어려움과 즐거움을 서술하고 있다. 다양한 구간에서의 심박수 조절, 벌레와의 싸움, 그리고 정상 도착 후 하산 과정을 공유하며, 주차 벌금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포함되어 있다.
년도
2024
여행 날짜
2024/08/26
이전글

Good Morning

Achalochan House 에서 맞이한 아침

무슨 일인지 눈이 스스로 일찍 떠진 아침이었다. 사각거리는 이불 위에서 뒹굴거리다 젖혀진 커튼 밖의 풍경을 보게 되었다. 바로 핸드폰 카메라를 쥐게 만드는 광경에 몇 장 찍어보았다. 그리고는 가만 앉아 밖을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오만과 편견의 장면들이 생각났다. Mr.Darcy 가 말타고 다닐 것 같은 드넓은 초원처럼 생겨서 그런지 갑자기 those thoughts occurred to be so randomly. 이 풍경을 하루 더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세수하러 일어나는게 싫지 않았던 것 같다.

Breakfast

준비를 얼추 마친 우리는 신청한 조식 시간인 오전 8시에 맞춰 부엌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4인 가족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니 시간은 10분 정도 늦어졌지만 그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도록 사이먼이 즐겁게 해줬다. 어제 사이먼의 말을 듣고 여행 계획을 바꿨다는 아빠의 말에 환호를 해줬고, 특히 오늘 Old Man of Storr에서 돌고래를 볼 수 있을거라고 알려주셨다. 새라가 어느 정도 준비가 완료된 낌새가 보이자 먼저 각자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 나는 전날과 동일하게 거대한 티팟에 담긴 잉블티에 우유를 받았고 엄마, 아빠, 동생은 따뜻한 커피를 직접 내려먹을 수 있게 프렌치프레스 커피메이커가 제공되었다.
먼저 위장길을 열어주기 위한 스타터가 나왔다. 아빠와 나는 요거트를 엄마랑 동생은 오트밀 죽이 각각 테이블에 놓였다. 일단 너무너무 맛있었다. 요거트 양은 충분했고 함께 올라 간 꿀은 단맛이 없는 요거트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예쁘게 컷팅 된 과일들은 눈을 즐겁게 했고 과일 못지 않게 많았던 견과류들은 한번 덖은건지 고소한 향과 풍미가 입안 가득 느껴졌다. 내가 불린 오트밀을 좋아하지 않아 엄마랑 동생이 먹은 오트밀 죽은 아쉽게도 못 먹어봤지만 둘 모두 굉장히 만족스럽게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우리의 그릇 상태를 주방 중문 넘어로 힐끔힐끔 사이먼이 확인하고 모두 숟가락을 내려놓은 것을 보자 그릇을 바로 치워줬다.
메인도 엄마와 동생은 팬케익으로 나랑 아빠는 full Scottish breakfast 를 택했다. 팬케익의 비주얼이 일단 압도적이었는데 켜켜이 쌓아올린 홈메이드 팬케이크와 그 사이 볼륨감을 담당하는 sliced 딸기. 단맛과 비쥬얼을 담당하는 sugar powder, maple syrup 그리고 무심하게 툭툭 놓인 블루베리들. 솔직히 내가 팬케이크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더 기대할 것 또는 새로운 것이 없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치 오리지널 팬케이크 하우스에서 팬케이를 주문하면 나오는 넓고 두껍고 먹다보면 물리는 류의 빵을 떠올렸던 것. 그런데 이렇게 예쁘게 나오는 줄 알았으면 고민도 않고 주문했었을 것이다. 동생과 엄마가 이걸 전부 먹었으니 맛도 보장되어 있었나보다.
아빠랑 내가 주문했던 full Scottish breakfast 는 솔직히 말해 그저 그랬다. 아무래도 내가 baked bean의 맛과 black pudding 의 식감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렇게 느낀 것일테다. 그 외에 베이컨이나 해기스, 말린 토마토 그리고 볶은 버섯은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하지만 선호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보니 다음 날은 엄마따라 팬케이크를 먹기러 했다.

기대되는 저녁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오늘의 일정을 시작하기 전 조금의 정비를 위해 다시 들어가려고 하는데 새라가 오늘 저녁 일정 계획에 대해 물어왔다. Ouig 에서 먹을 계획은 있지만 식당은 정하지 않은 상태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우려에 가득찬 새라의 표정. 주말에만 바글바글한 한국의 관광지들과는 다르게 이 섬은 일년 내내 사람이 바글바글한 상태라 예약 없이 레스토랑을 찾기는 힘들 것이라는 이유였다. 이제 역으로 새라가 우리의 당황한 표정을 보게 되었다. 그 사이 대화에 함께하게 된 사이먼이 한 식당을 추천해줬다. 그리고 새라가 서둘러 전화를 걸어 6시에 4인 가족을 위한 테이블을 만들 수 있냐고 예약을 해줬다. 사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식당 이름을 제대로 못 들은 나는 사이먼에게 구글로 정확한 위치를 받을 수 있었다.
The Stein Inn [바로가기]
거대한 fish n chips 와 사슴고기를 꼭 먹으라고 추천도 해줬다. 아침을 해결한 동시에 저녁도 깔끔하게 해결 된 기가 막힌 하루의 시작. 아직 9시도 안되었는데 저녁 6시가 기다려졌다.

최고 핫플 Old Man of Storr

우린 다시 좁은 길을 굽이굽이 타며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인 Old Man of Storr 로 향했다. 몇 번의 passing place 와 손인사를 하고 나니 주차장이 슬그머니 나타났다. 사실 주차장의 P 표시가 보이기 한참 전부터 차가 밀렸기 때문에 여기도 주차 공간이 부족할 것 이라고 포기한 상태였다. 물론 tracking 명소고 Isle of Skye 에서 절대 놓치면 안되는 곳임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여태 방문 해 본 장소 중 가장 많이 붐비는 곳이자 인기 대비 주차공간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작게 만든 곳이었다. 한 해에 22만 정도가 방문하는데 주차 공간이 140개 밖에 없는건 진짜 노양심이라고 볼 수 있다. 주차장에 공간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버리고 갓길을 따라 주차한 차가 이미 오조오억대였다. 우리는 그래도 예의상 주차 공간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두 바퀴 정도 돌았고 사실상 갓길 주차밖에 답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어딘가 엉성한 주차

그런데 그 가끔 이상한 촉이 tingle 거릴 때 가 있는데 the tingling moment struck. 아스팔트 영역을 제외한 곳은 계속 내린 비 때문에 모두 진흙 그 잡채였다. 진짜 ‘muddy’ 도 아니고 그냥 mud 그 자체. 그리고 갓길에 주차한 대부분의 차들은 3.85개의 바퀴가 진흙에 빠져있었다. 아스팔트 쪽의 앞 또는 뒷 바퀴가 살짝 아스팔트에 걸쳐진 정도라 3.85 바퀴가 빠진 것 처럼 보였다. 주차는 해야겠고, 주행차량 방해는 하면 안되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차는 렌트차고 해외고 ‘혹시라도 빠져나오지 못하면…’ 이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일부러 강력하게 아빠한테 “나 전화 로밍은 안해서 여기서 렌트업체 어시스턴스 못 불러!” 라고 까지도 얘기했다. 아빠는 다른 차들도 다 여기 주차했다면서 그대로 주차. 자꾸 진흙 안쪽으로 더 들어가길래 빠지는 진흙 쪽에 앉은 엄마는 그만 가라고 얘기 하고 차가 살짝 기우뚱. 그러고 나서야 도로를 좀 물고 주차를 하게 되었다. 우리 역시 3.85 바퀴 대열에 합류했고 나는 자포자기 한 상태로 ‘될대로 되라’라는 마인드로 내렸다.
(아빠가 문을 열어줬고, 내 후드짚업이 진흙으로 떨어진 이야기는 쓰지 않으련다…)

이런걸 트랙킹이라고 하죠?

생각보다 쌀쌀한 날씨였다. 아직 산을 올라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엄마는 걱정스럽게 나를 쳐다봤다. 결국 동생의 스웨이드 재질의 자켓을 걸쳤다.
나는 온도에 대한 개념이 잘 정립이 안되어 있다. 솔직히 지금도 16도라고 하면 집의 창문을 활짝 열고 3분이 지나 온도를 직접 체감하기 전까지는 무엇을 입고 나서야 할지 잘 모른다. 이 날도 그랬다. 온도도 당연히 알아봤고 산을 오르니 더 추워질거라는 사실은 알지만, 그래서 뭘 입어야 하는가는 와닿지 않았다. 엄마는 너무 중무장 하는 것 같고 동생은 온도에 무심하다. 아빠는 바람막이를 챙겨넣을 수 있는 가방을 들고 다니는데 나는 바람막이도, 가방도 없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냥 입고 싶은거 챙겼다.
이 트랙킹 코스는 약 4.5km 코스고 3 분할 정도를 할 수 있다. 첫번째 게이트까지 완만하지만 벌레가 많았던 초입, 넓진 않지만 쉬어 갈 수 있는 긴 돌계단길 그리고 마지막으로 좁은 마지막 자갈길. 시작부터 고난이었다. 시작부터 목적지가 보이는데, 목적지가 무지개 같았다. 눈에 보여서 닿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너무 멀어서 아무리 다가가도 가까워 지지 않는. 걷지 못하는 나에게는 동기부여가 전혀 되지 않는 사실이었다. 뭐라도 중간지점을 찍고 소목표를 달성해가면서 나아가야하는데 너무 탁 트인 풍경에 소목표 지점은 찍기 어려워보였다. 그래서 내 심박수를 기준으로 하기로 했다. 애플워치에 뜨는 내 심박수가 155~160이 되면 멈춰가기로.

1 구간 - 벌레 지옥

한 15분 올랐을까 바로 숨이 차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나가야겠고, 팔을 힘껏 휘젓지 않으면 손가락 한두마디 크기의 midge 들이 몸에 앉으니 팔 운동도 해야겠고, 풍경은 또 봐야하니 금방 힘에 부친듯 하다. 엄마랑 동생은 앞서나가있었고 못 걷는 내가 뒤쳐지지 않도록 아빠는 내 뒤에서 페이스 메이킹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걷기를 바로 멈추고 길에서 조금 비켜난 다음 숨을 돌리며 내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초입 쉬어가기 (좌) 걸어온 길 (우) 걸어가야 할 길
여전히 벌레는 많지만 내면의 치열했던 숨소리와 걸음걸이와는 달리 한걸음 한걸음 평화롭게 내딛는 사람들. 한국에서는 보기 작은 슬레이트 건물 하나 없는 탁 트인 풍경. 그리고 저 멀리 (좌측 사진 저 끝을 자세히 보면 보인다) 보이는 늘어선 불법 주차 차들. 다시 걷기 위해 앞을 향하니 보이는 내가 걸어가야 할 길. 다시 걸어보기 시작했다.

2 구간 - 쉼 쉼 쉼

아무래도 트랙킹 중인 심박수가 160으로 올라가는 것도 쉽지만, 잠깐 쉬어주면 다시 140으로 떨어지는 건 또 얼마나 빨리 떨어지는지. 크게 무리하지 않고 쉬고 싶을 때 쉬어가며 올라가는 건 꽤나 좋았다. 1 구간에서 그랬던 것 처럼 그냥 길에서 조금 벗어나 허리를 짚고 조금 숨을 고르기도 했고 납작한 바위에 앉아 쉬기도 했다. 그리고 가족 모두가 앉아 따뜻한 차도 마시고 귤도 까서 먹으면서 천천히 오르기도 했다.
첫번째 구간이 내게 벌레지옥이었다면 가족 전체의 페이스를 늦추면서 계속 쉬는 내가 모두에겐 쉼 지옥을 제공했을 수도 있다. …. 아.니? 쉬면서 차도 마시고 귤도 먹고 얼마나 좋아. (<< 급발진 중)
날씨 개념이 없으면 이렇게 기괴한 패션이 나오기도 한다. 크롭 맨투맨 + 경량패딩 조끼 + 비옷 + 머플러
이 기간이 굉장히 긴 구간이라는 사실을 하산하면서 알게 되었다. 사실 올라갈 때는 중간에 많이 쉬면서 끊어가기도 했고 올라갈 때는 눈에 Storr 가 보이면서 목표의식이 생겼는데 내려올 땐 조심스럽게 내려와야 하니 바닥을 보면서 걸었기 때문에 내 발걸음이 동기를 잃어버려 하산 길이 더 길게 느껴진 것 같다. 그리고 등산 중에는 내 호흡과 심박수가 쉼의 척도였는데 내려올 땐 그런 기준점이 없었던 것도 한 몫 한 것 같다.

3 구간 - Are we there yet 구간

억지로 소제목을 지은 것 같은 스멜이 난다. 정답이다. 지금 약 10분 고민했는데 마지막 구간은 딱히 뭐라고 부를만한게 없다 ㅋㅋ Shrek 의 Are we there yet 짤을 알면 나름 공감할 만한 제목일 수도 있다.
마지막 구간은 좁은 자갈길이었고 양 옆으로 붙어 가야 겨우 등산/하산객이 함께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폭이었다. 오히려 마지막 구간이 완만한 길이라 가장 부담없고 쉼없이 걸어갈 수 있었다.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이 가볍게 서로를 응원하는 눈짓을 주고 받는 구간이다. 목적지에 다 온 지점이기 때문에 더 가파른 길을 택해서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고, 드론을 날리는 사람도 있고, 정상에 가면 사람이 많으니 미리 이곳에서 풍경을 만끽하는 사람들도 있다.
트랙킹을 하면서 꽤 신선했던 점이 있었다. 첫번째 놀랐던 점은 반려(대형)견과 함께 트랙킹을 하는 문화. 두번째 놀랐던 점은 이 반려견들은 굉장히 트레이닝이 잘 되어 있다는 것. 가볍게 바라보면 ‘반려견들이 훈련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함께 트랙킹을 할 수 있겠지’로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이 것을 문화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 누구도 그 개를 만지지 않고, 찡그리거나 견주를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이 개들은 자유롭게 산을 올랐다가 다시 주인한테 가기도 하고 혼자 앞서가다 주인을 기다리기도 한다. 이 때 절대 사람이 걷는 방향을 끊고 지나가지 않고, 불특정 인물에게 다가가지도 않고 무조건 거리를 두고 제 갈길을 간다. 또 견주가 휘파람을 불면 바로 주인에게 돌아가 다리 옆에 딱 붙으며 다시 가도 된다는 사인을 주기 전까지 떠나지 않는다. 이렇게 트레이닝이 잘 된 개들에 대한 믿음이 기본적으로 깔려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정상 도착

조금씩 하늘이 흐려지던 즈음 마지막 발걸음을 내딛었다. 정상까지 마지막 오르막길을 오르지 않고 즐기던 사람들이 이해가 갔다. 생각보다 정상이라고 불리는 흙 바닥이었고 작았다. 그래도 지대가 높으니 반대편의 새로운 풍경도 볼 수 있었다.
슬슬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더 이상 카메라에 사진이 예쁘게 담기지 않자 우리도 내려갈 채비를 했다. (물론 딱히 채비라고 할 건 없다. 그냥 걸어온 길을 내려가야 하니 마음가짐을 새로 하고 이 풍경과 이별하는 정도?)
하산은 호흡이 가빠지거나 심박수가 올라가진 않지만 무릎이나 발목에 무리가 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잘 닦인 길도 아니고 울퉁불퉁한 돌 계단이거나 자갈길, 흙길, 이끼길이어서 더욱 조심스럽게 걸어야 했다. 위에도 적었지만 모든 신경이 내 발 밑을 향하고 있어 심리적으로 하산길이 더 오래 걸렸다고 느낀 것 같다. 그래도 1구간에 다다를 때 즈음 안개비처럼 내려서 그 많던 벌레들이 모두 땅에 납작하게 붙어있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Told you so”

주차 된 차에 가까이 다가가보니 노란색 주차딱지가 붙어있었다. 그 주차딱지를 발부하는 경찰관이 도로를 따라 차례차례 딱지를 붙이고 있었다. 특이했던 건 딱지가 붙은 차도 있고 안 붙은 차도 있었던 것. 동생이 얘기해보겠다고 막 달려가다가 돌아왔다. 알고보니 우리가 주차한 곳이 노란선이었기 때문에 불법 주차라 받은 것이다. 벌금 내는 법 등을 알아보기 위해 내가 저 딱지를 떼서 차 문을 열고 뒷 자리에 앉았다.
봉투를 열어보니 fine 안내문이 있었다. 상단에 써있기로는 벌금이 100파운드였는데 빨리 내면(2주? 10일 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50파운드만 지불하면 된다고 적혀있었다. 직접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카드로도 결제 가능하길래 아빠에게 그대로 얘기해줬다.
주차 딱지 얘기를 길게 쓸 생각은 없지만 좀 남기고 싶은 점이 있어 indent 를 넣었다. 아래 사진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저건 봉투다. 그리고 재질도 특이하다. 쉽게 말하면 전반적으로 코팅된 종이 느낌이 나고, 뒷면은 유리처럼 미끈거리는 소재에도 잘 붙을 정도의 접착력을 가졌다. 되게 좋았던 점은 degradable paper 로 만들어 eco-friendly 하다는 점과 유리에 붙여도 끈적이 흔적 없이 말끔하게 떼어낼 수 있다는 점. 뭔가 한국에서 택배 송장을 이런 재질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문득, 렌트카를 반납하고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면 어떨까 상상을 해보았다. 아마 렌트카 업체에 deposit 을 걸어놓았기에 벌금만큼 차감하고 돌려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몇 일 뒤 private tour 를 할 때 가이드 분께 여쭤봤는데 이곳은 주차 벌금이 철절한 나라라고 했다. 안 내고 튕기고 있으면 당국에서 차를 찾아 바퀴에 잠금장치도 걸어버린다고 하더라.
이제 출발을 하려고 엑셀을 밟았는데… 아… 공회전하고 있었다. 진흙에 파묻혀 빠져나오지 못해 진흙속에서 공회전을 하며 온 사방으로 진흙을 다 튀기고 있었다. 짜증이 났다. 주차할 때 진흙 안쪽으로 그만 들어가라고 해도 계속 들어가더니 이제 빠지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우선 내려서 차를 살펴보았다. 처참히 공회전 하고 있는 뒷바퀴… 오전에 이미 내 후드짚업이 진흙에 적셔져 있었기 때문에 그거라도 뒷 바퀴 밑에 깔아볼까 싶었다. 그러자 예전에 논두렁에 차를 빠트려본 경험이 있는 동생이 ‘그걸로는 안될거야’ 라고 말했다. 몇 번의 무의미한 공회전 후 아빠도 운전석에서 내려 점점 깊어진 진흙을 살펴보았다. 아마 아빠 머리 속은 엄청 복잡했을 것이다. 으레 당장 이 문제를 타개해야 하는데 ‘누군가가 하겠지’가 아니라 ‘내가 해결해야한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는 순간부터 뇌가 역대급으로 빠르게 도니까 말이다. 근데 하늘에서 내려 온 천산가, 맞은 편에서 하산 후 지나가던 건장한 청년 2명이 도와주겠다고 다가왔다. 아빠한테 핸들을 최대한 오른쪽으로 돌리면 (조금이라도 차 바퀴가 아스팔트에 더 닫게 하기 위함) 자신들이 뒤에서 밀어주겠다고 했다. 고마움을 표시하고 서둘러 아빠는 운전석에 탔다. 동생도 두 청년들과 함께 차 궁둥이를 힘차게 밀었고 너무 다행히도 탈출에 성공했다. 나는 그들이 흰색 옷을 입고 있었어서 흰색 옷의 안부를 물었고 고맙다는 말을 전한 뒤 맞은편에 서 있던 여자친구/아내 분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그렇게 진흙 위 주차에 대한 트라우마를 형성하고 우리는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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